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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우아함과 교회음악

 

*위의 연주는 작년 5월의 어느 날 밤, 세월호에 가슴 아팠던 마음을 달래며 연주한 ‘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라는 곡 입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들은 이 노래를 잘 모르실텐데 이어폰 끼고 차분히 들어보세요.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도 아름다운 곡입니다. 가사는 맨 밑에 남겨놓겠습니다.

<예배의 우아함과 교회음악>

예배는 성 삼위일체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그 의미만큼 무게 있는 행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뚜렷할수록 죄인인 인간은 그분과 섞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분이 뚜렷할수록 예수님의 대속이 드러나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기억에서 잊히고 영원히 죄인 될 뻔한 우리와 영원을 창조하신 신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만남의 우아함(graceful)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러 가지 Tool 중 음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악의 창조자로서 그 안에 질서를 넣으셨고, 얇은 고막의 세미한 떨림이 뇌에 도달해 소리의 규칙에 따라 우리 정서가 반응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악기의 선율을 듣기만 하는 소극적인 행위에서도 우리는 그분의 찬란함을 상상하며 기념할 수 있으며, 노래를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찬양할 수 있게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노래할 때 음높이가 결정되기 위해 호흡과 성대와 목, 얼굴 근육, 혀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데, 단지 생각만으로 몸을 제어하여 고음과 저음을 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신과 인간의 우아한 만남을 위해 우리가 모두 노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우아한 만남은 예배로 이어집니다. 우아한 예배를 위한 음악이란 어떤 음악일까요? 그건, 듣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행하심이 연상되는 음악입니다. 그런 음악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 게 교회음악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습니까? 한국교회는 한국의 교회음악을 비판하십시오. 다만 찬양팀만을 비판하지 말고 하나님을 도통 연상할 수 없는 음악이 난무해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온 자신을 비판하십시오. 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예배의 Tool이 되는 음악의 수준에는 관심이 없고 장르 때문에 항상 불만입니다.

하지만 장르는 본질이 아닙니다. 클래식이라고 우아한 게 아닙니다. 요즘 유행이라고 해서 가벼운 게 아닙니다. 느리다고 음악이 깊고, 빠르다고 가벼운 게 아닙니다. 장르가 무엇이든 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디자인한 질서, 곧 수준이 있는 게 우아한 거고 그렇지 않은 게 우아하지 않은 겁니다. 지금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그 음악적 수준을 채울 순 없습니다. 왜입니까? 그동안 그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음악이 발달한 독일은 작은 교회라고 해도 Kantor(교회음악가)가 존재합니다. 교회의 크기가 예배음악의 수준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음을 질서 있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성도의 이해와 요구가 결정합니다. 이해하면 요구하게 되고 요구의 지속성은 공급의 결과를 낳습니다.

그 요구는 무슨 요구입니까? 단순히 수준 있는 음악적 요구라고 이해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만족시킬 음악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음악의 창조자입니다.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죽음의 선상에서 줄타기 하던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예술을 허락받은 인간은로서 갖은 노력으로 거저 받은 은혜를 기리자는 겁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우리의 영성이 고결한 음악에 담겨질 때, 신과 인간의 만남의 현장에서 우아함이 넘칠 겁니다. 그 놀라운 음악에 우리의 마음의 울림을 더해 공명할 때 선언될 그 분의 거룩한 성품을 상상해봅시다.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의 구호가 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최고의 음악을, 최고의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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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이름 비길데가 어디 있나 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귀하신 이름 놀라우신 이름 참되신 이름 우리주 예수

(후렴)
주 예수 이름 내가 생각 할 때 내 마음 속에 기쁨 넘치네
우리의 소망 구원 되시는 주 그 이름 비길 데 어디있나

2. 비탄에 빠진 가련한 영혼이 슬픔의 안개 걷어치우고
즐거이 새생명 새힘을 얻어 쓰라린 상처 아물었도다

3. 이 세상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 이름 오늘 더욱 빛나리
내일도 영원토록 증거 되며 찬란한 빛을 더욱 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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