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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교육방식

승부 중심의 개인주의가 대한민국 사회에 문제로 대두되며 사람다움에 대한 관심이 증폭해 인문학이 조명받고 있다. 인문학은 사람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신학과 예술도 인간과 밀접하기에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결국 대한민국 교육계에선 인문학적인 사고를 ‘Input’ 해줘야겠다는 발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필요는 백번 동의하나 방식엔 동의하지 않는다.

빈곤층이 생겨나는 불공평한 사회 구조를 가르치고 ‘모두의 인간다운 삶’ 을 위해 왜 개혁해야 하는지 가르치진 않고, 빈곤층을 만났을시 도우면 의식있는 사람이 된다고 가르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맘에 없지만 인정받기 위해 거짓 구제하게 된다. 승부 중심 개인주의나 마찬가지다.

인문학을 좋은 책으로 배울 수도 있겠지만 실은 문화에서 체득하는 거다. 선진국서 운전해 보면 대번 이해된다. 양보가 기본적 사고지, ‘내가 양보해준다’가 아니다. 우리는 양보를 책으로 배우지만 사회문화가 함께 가르치질 못하니 적용이 안된다.

돌아보니 나는 가정에서 예술인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문화 안에 있었다. 아래 사진 한 장이 그 대표다. 7세 때 기억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축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음악은 일상이었다. 커가면서 그것은 인간의 권리임을 인식했다. 하지만 돌아보라, 음악감상이 사치일 뿐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자전거 뒤에 7살인 나를 태우시고 대전 시내로 가셨다. 도착하니 레코드 가게였다.

‘너 듣고 싶은 음반 골라’

나는 ‘우주소년 쟝가’를 골랐고 집에 돌아와 LP 플레이어에 아버지가 판을 얹어주셨다. 인문학의 껍질을 입은 억지 교육이 아니라 우리 집 문화였다. 이후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를 태우고 시내에 나가서 ‘네가 치고 싶은 악보 골라’라는 문화에 나는 자주 노출되었다. 훈련소 들어가기 전날엔 ‘바다 한 번 봐야지’라며 군산에 데려가셨고 유학 가기 전엔 산에 데려가셨다. 훈련소 들어가면 개인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만, 바다를 볼 권리가 인간에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류의 경험이 많다. 나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이 되었다.

책 백 권, 천 권으로 되겠는가? 대단한 오해다 그건. 인문학 교육은 단기주입이 아니라 긴 호흡이고 문화의 영향이다. 사치스런 얘기일지 몰라도 선진국에서 조금 살아보는 것이 인문학 교육으로 좋을 수 밖에 없다. (약한)사람이 중요한 나라일수록 좋다.

제자들에게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본인’을 표현하라는 거다.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야 하고 그게 우선 되어야 나처럼 남도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음악은 그렇게 하는 거라 믿는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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