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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을 맞이하여, 독일 입시 이야기


저는 독일에서 재즈를 공부했습니다. 26세에 건너가서 32세에 귀국하기 까지 젊은 황금의 시기를 그 곳에 쏟았습니다. 학비는 없고 생활비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한 달에 100만원, 1년에 1200만원 정도면 모든게 가능했습니다. 헉! 하죠?

한국에서는 클래식 작곡, 교회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재즈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를린 음대 재즈과의 피아노 주임교수를 찾아갑니다. 제가 독학 후루꾸로 만든 재즈 곡을 그 분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질문을 하더군요.

‘왼 손 보이싱은 어떻게 만든거냐, 니가 혼자 한 거냐?’

재즈를 들어보니까 그런 식으로 하길래 흉내냈다고 대답했더니 잘 했다고 칭찬해줬습니다. 그리고, 이런 거 할 수 있냐고 하며 제 곡의 코드를 가지고 즉흥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재즈의 언어’를 몰랐기 때문이죠.

대신 ‘그렇게 빠른 즉흥은 아예 못하고, 내 지금 기분을 즉석 발라드 연주로 표현해보겠다.’ 이런 겁없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 어디서 줏어들은 말도 안되는 코드를 여기저기 끼워 넣어 발라드는 발라드인데 약간 재즈틱한 저렴한 연주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교수는 네가 지금은 재즈의 언어를 모르지만 재즈공부를 시작해서 배워가면 되겠다고 말했고, 지금은 상황이 안되고 ‘3개월 기다리면 레슨을 해줄 수 있다.’ 얘기하더군요.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얘기는 ‘3개월 기다리면 네가 우리 학교에 입학해서 내 제자가 되도록 준비시켜보겠다’와 비슷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급했고, 나는 당장 시작하고 싶으니 학생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하여 그 교수의 제자와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와 동갑이었죠. 그 이름, 크리스티안 코바치. 이 친구의 흐느적 거리는 즉흥연주는 뻔하지 않고 아주 독특했습니다.

첫 레슨 때 블루스 스케일과 왼손 보이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레슨 부터 바로 즉흥 연주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레슨은 칠 때마다 맘대로 바꿔 칠 수 있는 재즈 보이싱과 즉흥 연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재즈에서 미리 뭘 정하는 것은 매력 떨어지는 것이었죠. 연주자간 최소한의 약속만 합니다.카피를 해 오라고 한 적은 없었고 지금 배우고 있는 곡을 남들이 어떻게 연주했나 찾아서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베를린 ‘두스만’이라는 음악샵에선 CD를 그냥 뜯어서 옆에 쌓아 놓고 헤드폰 끼고 들어볼 수 있습니다. 뜯었지만 안 사도 됩니다. 그냥 놔두면 직원이 다시 가져갑니다. 그런 좋은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공부하고 있는 곡을 검색하여 CD를 한 무더기 가져와서 듣습니다. 그리고 제일 맘에 드는 CD를 골라 그것을 사겠다고 하면 다시 포장된 CD를 가져다 줍니다. 그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독일에 대한 환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나요? ㅎㅎ

그렇게 1년을 준비하여 저는 입시를 보게 됩니다. 독일 재즈과는 시험보는데 뭘 외워가고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독일 애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합니다. 독일에 가서 재즈를 처음 배웠기 때문에 저도 그냥 그런 줄 알고 공부했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준비한 곡을 칩니다. 입시 요강은 바로크, 고전, 낭만 한 곡씩 클래식 피아노 세 곡, 블루스 포함 스타일이 다른 재즈 3곡, 자작곡 1, 초견, 시창, 청음 입니다.

우선 들어가서 클래식 피아노를 쭉 칩니다. 이제 재즈 곡인데 하고 싶은 거 먼저 하라고 해서 나름 제일 자신 있는
몽크의 Bemsha Swing을 연주했죠. 이 곡은 입시곡을 정하며 선생님이 이 곡은 어때? 하며 보여줄 때 단번에 매력에 빠져버려서 그 자리에서 나 이거 치고 싶다고 했던 곡입니다. 이 곡을 입시곡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Bemsha Swing 치겠다니까, 다들 굉장히 관심 있어 하더군요. ‘오! 그걸 입시에 가져왔어?’

드럼, 색소폰, 피아노 교수가 시험관이었는데, 쭉 쳤더니 블루스 한 번 쳐보라고 그러더군요. 콘트라베이스와 드럼 반주는 학교 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같이 해줍니다. 저도 학생이 되어 봉사했었죠. 그런데 블루스를 하긴 하되 천천히 하지 말고 아주 빠른 템포로 해보라는 요구를 하더군요. 제가 준비한 건 보통 템포였거든요.

그 짧은 순간, 동갑내기 레슨 선생님 크리스티안 코바치의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템포가 엄청 빠를 땐 오히려 조금 치는 게 좋아. 그리고 툭툭 쨉을 던지듯이 끊어 쳐야 어울려’ 그래서 2백 몇십은 되어 보이는 템포에서 나름 쫄지 말자 생각하며 그냥 휙휙 던지며 모티브 위주로 발전시키며 연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다른 학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봤던 학교들은 중간에 끊는 법은 없었습니다. 테마 듣고 솔로 듣고 다시 테마 반복 모두 듣습니다. 연주를 아무리 못해도 다 들어줍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자작곡을 보여주는 시간입니다. 1년 전 베를린 음대 교수에게 보여줬던 곡을 다시 다듬어서 치고, 내가 난생 처음으로 작곡한 재즈곡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새로 작곡할 수도 있었지만 나름 전략이었죠. 그랬더니 재즈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냐고 묻더군요.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시기를 따져봐서 얼마나 발전했나 보려는 거죠.

이제 초견 시간입니다. 앞에 재즈 스탠다드 책 비슷한게 있는데 이게 웃기는게 리얼북 처럼 생겼는데 모두 생소한 멜로디만 있는 희한한 책이었습니다. 피아노 교수가 와서 이거 한 번 쳐보라고 대충 하나를 폅니다. 1절은 멜로디를 치면서 보이싱 하고 2절은 솔로를 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겁 먹을거 없습니다. 계속 준비 해왔던게 바로 즉흥연주기 때문이죠.

시험이 끝나고 한 명씩 들어오라고 해서 피드백을 해줍니다. 입학 정원이 정해져있진 않습니다. 보통은 졸업생 수에 맞춰 티오가 나면 그 수대로 뽑거나 아주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좀 더 뽑는 식인데 보통 한 두 명을 뽑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고 터지는 심장을 안고 들어갔습니다.

‘음… 우선, 당신은 합격했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그리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오후에 있을 이론 시험에 대해 안내해주더니 잘 치르라고 하더군요. 이론 때문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론 시험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스케일을 치고 이게 무슨 선법이냐고 묻는 청음 시험도 있습니다. 프리지안이냐, 도리안이냐. 그리고 교수가 입으로 스캣을 하면 그걸 받아 적는 청음 시험도 있습니다. 각종 이론 문제가 중간 중간에 있고 마지막으로 4성 청음이 나옵니다.

그 해, 재즈 피아노과 합격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Leonid Chizhik의 제자가 된 것이죠.

학교를 입학하여 첫 레슨 시간에 스승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림! 너 입시 볼 때 기억나? 너 그 때 잘 못쳤어. 그 누구냐… 너 바로 앞에 쳤던 애 있잖아, 걔 잘 치더라’ 그리고 한 마디를 더 이어가십니다.

근데 걔는 ‘시험을 봤고, 너는 음악을 했어.’

그런데 제가 무슨 음악을 했겠습니까, ‘독일은 시험 때 가능성으로 본다’는 말을 수 없이 듣긴 했지만 떨려 죽을 뻔 했고 가능성은 커녕, 여하튼 별로 보여준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학생들의 플레이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보고 있었나봅니다. 학생들이 떨려서 다 죽을 쑤겠지만 그래도 즉흥 연주 속에서 자기 음악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나, 아니면 보여주기식인가를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빠른 블루스 시험 볼 때 사실 칠 줄 아는게 없어서 그냥 툭툭 던진 것에 살짝 속으신게 아닌가 ㅎㅎㅎ 생각되기도 합니다.

독일 입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디테일하게 쓰자면 방 구하기, 어학원, 재즈클럽투어 부터 시작해서 무궁무진한 독일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요.

음악, 특히 한국엔 실용음악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 길을 걸어가다 보면 결국 이 두 가지 지점에서 갈립니다.

1. 외워서 하는 재즈 말고, 즉흥 연주가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
2. 작곡이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

제가 입시 시험관이라면 외워서 치는 사람은 아무리 잘 쳐도 결코 뽑지 않을겁니다. 그건 재즈가 아니기 때문이죠. 또한 작곡은 필수로 가르칠겁니다.

즉흥연주가, 시간에 흘려보내는 ‘나’라면
작곡은, 시간에 붙들어 놓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연주는 아이머스 고등학교가 3년간 품은 피아노 전공 학생의 자작곡입니다. 3학년 전원 자작곡으로 공연하고 졸업 앨범을 제작합니다. 즉흥 연주가 아니라 뭘 자꾸 외우려고 하면 꿀밤을 주면서요. 이를 위해 합주를 지도하며 우리 아이들의 영상을 조금씩 기록하고 있는데 이제 완성해서 막 합주 시작한 것이라 부족하지만 한 번 보시죠. 제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녀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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